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성렬 교수 피살사건 (문단 편집) === [[증산교 본부]]의 설립과 6.25전쟁 === 그렇게 이상호·이정립과 안세찬은 함께 '대법사 증산교'를 개교한다. 대법사 증산교의 중심간부들은 오행에 따라 토주土主ㆍ 금주金主ㆍ 수주水主ㆍ 목주木主ㆍ 화주火主라 이름 붙인 5명이었는데, 이상호는 토주, 이정립은 목주, 안세찬은 수주였다. 불과 20대 중반에 불과하던 안세찬이 핵심 5인방에 들었음은 대법사 증산교에서 안세찬의 비중이 매우 컸다는 뜻이다. 교단 창립 직후 대법사 증산교는 의통제작에 착수하는데, 의통이란 다음과 같다. 강일순은 생전 자신의 사후 대병겁 창궐을 경고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 대병겁은 세균병, 바이러스병이 아니라 신장(神將)이 인간의 혼을 뽑아가는 신병(神病)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병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의통인패(醫統印牌)라는 신물 한 벌을 남몰래 제자 박공우에게 전수하며 무진戊辰년 동지冬至에 기두起頭하며 묻는 자에게 전하라고 명한다.[* 대순전경 초판 12장 27절] 또 다른 기록에는 “무진년 동지에 기두하는 자가 있으니 그에게 의통인패 한 벌을 전하라, 그가 세상을 구원할 자니라.”[* 이중성 천지개벽경]라고 했다. 그리고 박공우가 무진년 동지에 만난 이가 바로 이상호다. 박공우는 이상호가 바로 십수년 전에 스승 강일순이 자신에게 말한 '무진년에 기두하는 자'라고 짐작했고, 이상호에게 의통인패를 전했다고 한다. 증산계통 종교문헌을 추적해 본다면 이상호는 의통을 전수받았을 확률이 높다. 이상호는 개벽이 곧 목전이라고 생각하여 위하여 자기가 아는 의통제작법을 안세찬 등 교내 간부들에게 전수했다. 이때 의통제작에 필요한 [[주사 #s-3|경면주사]] 등은 부호의 아들이었던 안세찬이 상당수 부담했다고 한다. 그렇게 교세를 확장해 나가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법사 증산교 지도부는 [[6.25 전쟁]]이 강증산이 예고한 개벽이 드디어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의통인패 등을 배부하였다. 그러나 전쟁만 있고 병겁이 없음을 보고 뒤늦게 개벽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증산교 지도부는 안세찬 쪽에 분배했던 의통인패 및 호신의통, 호부의통을 회수하고자 했지만 안세찬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이상호ㆍ이정립 형제가 분노하여 안세찬이 가져간 의통에 부여된 신적 권능을 무효로 해달라고 천지에 기도하는 의식을 치르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아무튼 [[6.25 전쟁]]을 계기로 이상호 형제와 안세찬은 서로 결별한다. 이후 이상호가 1966년에 사망하자 동생 이정립이 교주직을 승계받아 죽을 때까지 증산교의 교주로 지내다가 1968년에 사망한다. 이정립이 살아생전 가장 아끼던 후배 신앙인이 바로 본 사건의 피해자 홍성렬이다. 이상호ㆍ이정립 형제가 모두 사망하자 안세찬은 증산교를 찾아와 자신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대전에서 독자적으로 교단을 창교했으니 현재의 [[증산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